Hubris & Hamartia [KR]
Bloodlust의 맹점은, 연출가-주인공이 자신의 병증을 호소하며 관객으로부터 작위적 연민을 불러일으키려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오토픽션의 작품 특성 상 연출가-주인공이 두 가지 역할을 제대로 분리하지 못해, 나르시시즘적 자가당착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었다.
이 점을 타파하기 위해, 도리어 인물의 결점을 부각시킴으로서, 연출가가 주인공을 객관적이고 냉소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관객에서 전달하는 한편, 평범하고 또 ‘결점 많은 인간’이 운명을 거스르려는 고군분투를 그려냄으로써 ‘그리스 비극적 숭고함’을 부여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이러한 숭고를 관객이 느끼게끔 하려면, 주인공을 휴브리스와 하마르티아를 지닌 비범하되, 인간적인 존재로 설정하여야 한다. 보통의 사람보다 비상하게 시스템의 문제를 인지하고, 이를 회피하기 위한 방도를 내놓는 사람. 관객들이 자연히 그 시도를 응원하게끔, 적당히 총명한 사람. 하지만 그 역시 거대한 시스템 하에서 깔려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임을 인지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관객이, ‘도대체 저 시스템이 어떻길래 이런 사람까지 희생당하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를 통해 관객은 ‘시스템이 날 이렇게 만들었다’라는 편파적 주장에서 오는 기계적인 연민이 아니라, 한 개인이 운명 또는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정면돌파하는 과정에서, 비참하게 무너지는 데에서 오는 카타르시스와 숭고함을 느끼는 ‘감응적 연민’을 자아낼 수 있다.